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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쪽대본·초치기, 한드 고질병 다 까보죠

기사승인 2017.02.03  09: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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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사 몇 마디, 휴대폰 문자로 보낸 적도 있어"

“대사 분량도 그렇고 버거웠다. 그래서 매일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펑펑 났다”
  
지난해 tvN ‘굿 와이프’를 통해 11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전도연이 인터뷰 자리에서 한 말이다.
  
연기 베테랑인 그녀가 드라마 촬영 현장이 힘들었다고 토로할 정도라니. 맞다. 한국 드라마 촬영장 상황은 거의 극한직업 수준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사전제작 드라마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 외에 대부분의 해외에서는 사전 제작 시스템이 기본이다. 그러나 한류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인 한국 드라마는 여전히 방송과 동시에 제작되는 시스템이 태반이다.  

사진은 본문 기사 내용과 무관함

◆ 쪽대본 모자라, 휴대폰 문자로 오기도

한국 드라마 시스템의 가장 큰 고질병은 쪽대본과 ‘초치기’로 불리는 생방 촬영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쪽대본이라 부르는가. 드라마를 촬영하다 보면 촬영 장소 혹은 날씨 등의 외부적인 요건으로 특정 장소의 장면을 먼저 찍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의 경우 캐나다 장면은 모두 한꺼번에 찍어왔다. 때문에 김신(공유 부)과 지은탁(김고은 분)의 재회 장면은 방송 전 이미 다 찍어 놓은 셈이다. 이럴 때는 완성된 대본이 아닌 미리 작성한 몇 장짜리가 나온다. 이를 보편적으로 쪽대본이라 부른다.
  
그런데 최근에는 원래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드라마 촬영 일정이 촉박해지면 한 회 완성본이 아닌 그날그날 촬영분이 오게 되는데 이것이 진짜 쪽대본이다.
  
보통 미니시리즈의 경우 4회분 정도 촬영을 끝내고 본방송에 들어간다. 대본 역시 책(대본 완성본)으로 나온다. 그러나 대략 5회부터 드라마 대본 수정본이 ‘쪽’으로 날라 온다. 10회가 넘어가면 거의 생방송 촬영으로 바뀐다. 때문에 촬영 실시간으로 쪽대본(완성된 대본이 아닌 부분 대본)이 날아온다.
  
대본이 쪽으로 전해지니 촬영 역시 초치기다. 당일 방영분을 아침까지 촬영하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사전 촬영한 드라마도 종영을 앞두고는 촬영 분량이 모자라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SBS ‘용팔이’ 촬영 당시 주연배우 주원은 일주일간 1-2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고 털어놔 취재진을 경악케 만들기도 했다.
  
드라마 외주 제작사 소속의 한 FD(연출 보조)는 “쪽대본과 초치기 촬영이 시작되면 공용 메일함을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한다”라면서 “작가로부터 ‘보냈다’라는 문자가 오면 메일을 확인하고 A4 용지 1-2장 분량의 대본을 뽑아 연기자들에게 배급한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이 FD는 “쪽대본 조차도 어느 때는 수정본이 3-4차례 오는 경우도 있다”면서 “가끔은 대사 몇 마디 씩을 휴대폰 문자로 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은 본문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생방송을 방불케 하는 촬영 상황이다 보니 연기자들은 대본을 분석할 여유도 없이 연기에 나서는가 하면, 조연 혹은 단역 연기자들의 경우에는 촬영 장면 한 컷을 위해 24시간 대기하는 일도 허다하다. 
  
익명을 요구한 단역 연기자 A 씨는 “앞뒤 상황을 모르고 촬영하는 것은 부지기 수다. 자기 대본을 외우기에 급급한 상황이다”라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해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 이 정도면 연기가 아니라 기술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A 씨는 “심지어 16부를 계약하고 촬영에 임했다가 10회쯤 부분에서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쪽대본 때문에 촬영장에서 온종일 기다리는 것은 배우로서 당연히 감내해야 할 일쯤으로 여겨지는 것이 한국 드라마 시장의 현주소다”라면서 “가끔은 내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기계처럼 대사를 하다 보면 회의감에 빠지곤 한다”라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 초치기 촬영, 안전문제 심각
  
스케줄에 쫓기다 보니 촬영장 안전 문제가 소홀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바로 사고로 이어진다. 

주연 배우들의 경우에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팬들과 언론 그리고 방송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배우들의 경우에는 쓰러지면 병원에서 수액 주사라도 맞고 오지만, 단역 배우들의 경우에는 불평 한 마디 할 수 없다.
  
특히 한겨울과 한여름 야외 촬영의 경우에는 추위와 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로 견뎌야 한다. 혹시라도 아파서 쉬어야 하면 다음 촬영에서 여지없이 퇴출되기 십상이다.
  
최근 종영한 판타지 드라마에 출연했던 단역 연기자 B 씨는 “촬영 중 접촉사고가 있었다.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있는데 촬영장으로 불려가 야간까지 촬영을 하기도 했다”라면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얼굴 부기가 빠지지 않은 채 촬영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제작진들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앞서 만났던 외주 제작사 FD는 “드라마 한 편을 제작할 때 제작진들은 거의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면서 “배우들은 촬영 중간 짬짬이 차에서 자거나, 세트장에서 쪽잠이라도 청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작진은 꼬박 밤을 새워야 하고, 무거운 장비들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보통 체력으로는 견뎌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 사전제작 드라마가 해답?
  
드라마의 퀄리티와 배우들과 제작진의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은 사전제작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을 고칠 수 있는 해답이 될까?
  
사전 제작 드라마의 경우에도 투자가 충분히 되지 못한 작품은 빠듯한 제작비로 촬영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촬영 회차는 당연히 적어지고, 촬영 장소 역시 매우 열악해진다. 또 유명 한류 스타를 캐스팅하고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드라마의 경우에는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과도한 PPL을 집어넣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쪽대본과 초치기 촬영의 해답이 꼭 사전제작 드라마라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정부는 드라마 표준 계약서를 제정하기도 했다.
  
이 표준 계약서로 인해 외주사에 출연료 지급보증을 요구하거나 출연료 미지급시 제작비 지급을 중지할 수 있다. 또 촬영 이틀 전에는 대본을 제공하도록 하고 하루 최대 촬영 시간을 18시간으로 제한해 연기자와 스태프들의 근로 환경도 개선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표준 계약서가 의무사항이 아닌 만큼 활용도는 미비하다. 또 실제 제작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포함돼 있어 사실상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드라마 쪽대본, 밤샘 및 초치기 촬영 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 드라마에 임하는 배우들과 제작진은 관행(?)처럼 여긴다. 또 실시간으로 촬영하다 보니 시청자들의 의견과 반응을 대본에 녹여 몰입도와 공감대를 높이는 순기능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 제작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쪽대본, 초치기 촬영은 시정되어야 한다. 방송사를 비롯해 제작사 그리고 광고주의 긴밀한 협조가 하다.

홍미경 기자 mkhong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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